서평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정신질환의 흑막, 미세아교세포

D cron 2021. 5. 21. 07:49

우울증은 뇌가 실제로 손상되는 병이다.

우리는 주의력 결핍장애, 강박장애, 우울증은 나약하기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털어내고 일어나면 되는 문제라고 쉽게 치부해버린다. 육체적인 손상으로 인한 병은 사회적으로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인정해 주지만, 정서적인 병은 굉장히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부터도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의 병은 병에 걸린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2016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연구팀이 만든 '뇌 아틀라스'는 암시, 단어, 감정, 기분에 뇌의 각 영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동증 환자들은 알고 보니 후방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이라는 부위에 신경 결손이 있었다.

 

이처럼 누군가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는 흔히들 지레짐작하는 것처럼 단순히 훌훌 털고 일어날 여력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의 뇌에서 실제로 손상이 벌어졌기 때문에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기능

이는 뇌의 면역기능 때문인데, 면역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도록 하자. 생물 시간에 우리 몸 속에는 우리 몸에 무단 침입한 적을 물리치는 백혈구가 있다고 배웠다. 만약 상처가 나서 세균이 침투하면, 백혈구들은 상처 난 곳에 득달같이 달려가 세균을 공격한다. 이때 우리는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건 백혈구가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염증 반응은 항상 적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환경 자극에 계속 시달린 백혈구는 피아식별을 하지 못하고 아군인 장기 조직이나 관절, 신경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한다. 이게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병이 류머티스 관절염, 제1형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다.

 

이제 뇌 쪽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보자.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에는 백혈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뇌에서는 누가 백혈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아주 작은 세포이다. 그리고 이 세포가 앞으로 우리가 다루게 될 전체적인 책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녀석이다. 이 작디작은 세포의 이름은 미세아교세포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세아교세포는 면역계의 백혈구와 림프구와 뿌리가 같은, 즉 동일한 줄기세포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백혈구와 형제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면역체계를 알아보고, 뇌에서의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미세아교세포를 알아본 이유는 우울증과 같은 뇌 질환의 원인으로 미세아교세포가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아교세포는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가

우선 미세아교세포가 무엇을 하는 세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뉴런과 시냅스가 잘 자라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적재적소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뇌의 뉴런 그물망을 튼튼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의 뇌를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미세아교세포는 갑자기 돌변하기도 한다.

2017년, 한 연구팀이 실험쥐에게 예측 불가능한 스트레스를 장시간 겪게 했을 때 고작 5주 뒤에 해마의 미세아교세포에 기능이상의 징후가 생기기 시작하더라는 연구 결과를 학계에 보고했다. 일단 징후를 보이자 겉에서도 우울증 증상이 뚜렷해지기까지는 금방이었다. -113p

인용구에서 살펴본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감염균, 환경 독소, 외상, 물리적 학대와 정신적 학대 같은 것들이 원인이 되어 미세아교세포가 잘못 프로그래밍되면, 뇌의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미세아교세포는 뇌신경을 보호하는 화학분자 생산 작업을 중단하고 염증 신호를 여기저기 뿌리기 시작한다. 이때 인간이 생각하고 복잡한 감정을 처리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꼭 있어야 할 핵심 시냅스들을 가차 없이 없애기 시작한다. 시냅스가 손상되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난다. 사소한 것에 과민 반응한다. 걸핏하면 낙담한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방금 전까지 막 신났다가 또 금세 한없이 가라앉는다. 기억력이 형편없다. 아니면 늘 긴장감과 불안에 떨게 된다. 이것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학습장애, 강박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불안증, 우울증, 양극성 장애, 뇌진탕 후 증후군 등등... 

 

삶이 바닥까지 가라앉은 사람들을 위해

그렇다면 미세아교세포를 진정시키고 뇌의 항상성을 다시 유지시킬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심한 우울증으로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여러 방법들이 나오는데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첫째로 TMS가 있다. TMS는 두피에 붙인 센서를 통해 필요한 뇌 부위에 정확히 조준하여 순간적인 자기자극을 전달하는 기법이다. 깜짝 놀란 뇌 부위에서는 전류가 생성되는데, 이것을 이용해 모자라거나 넘치는 신경회로 활동성을 조정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TMS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경과는 어떤지 효과는 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두 번째로 qEEG 뉴로피드백 치료가 있다. 이는 쉽게 말해서 일정한 패턴을 계속 그리도록 뇌파를 가르치는 것이다. 삐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환자는 속으로 잘했다고 생각하고, 이를 뇌는 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환자는 신호음을 많이 들어야 뇌파 모양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 노력하게 된다. 뇌가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책에서는 뉴토피드백을 받는 과정과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는지 나온다.

 

이것을 보면서 에피소드가 갖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논리 정연하고 정교한 말들은 혼자서 말하는 느낌이라면, 에피소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에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들을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무너진 사람들의 삶이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노력과 발견에 의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이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기에 꽤 임팩트가 있는 책이었다.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 그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삶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내게 주어진 삶이 조금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